[군산 여행코스] 히로쓰가옥/동국사/조선은행 

"한국속의 작은 일본, 군산"




히로쓰가옥 (신흥동 일본식 가옥)


군산 여행코스의 첫 출발지인 히로쓰가옥이다. 히로쓰가옥은 신흥동 일본식 가옥으로 히로쓰라는 농장주가 살았던 집으로 통칭 '히로쓰가옥' 이라 불리오고 있다. 히로쓰가옥은 영화 타짜에 출현해 유명해진 관광지로써 군산 관광을 온 여행객이라면 무조건 들려야 할 필수코스이다. 


우선 히로쓰가옥의 특이한 점은 일본식 가옥임에도 불구하고 한국 가옥에서나 볼 수 있는 온돌 시스템을 볼 수 있는 것이다. 아궁이와 굴뚝 그리고 온돌이 이를 증명해 준다. 아무리 일본식 가옥이라 하여금 겨울을 대비해야 하는 한국에서는 겨울을 위한 온돌이 필수 불가결 하였다. 일제의 식민지가 되었어도 결코 모든 것을 바꾸지 못했다는 점에서 한국인에 대한 자부심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다.




히로쓰 가옥의 경관은 나의 눈길을 사로 잡았다. 적당히 넓은 정원과 절제된 2층가옥이 잘 어울려 아름다운 모습을 보였다. 독특한 창살과 목조 건물은 우리 주위에서 흔히 볼수 없는 건축물 이다. 가장 나의 눈길을 사로잡았던 것은 여섯개의 창살로 나누어진 원형 창문이였다. 현대 시대에 써도 될 만한 좋은 디자인이며 히로쓰가옥의 트레이드 마크가 될만큼 좋은 디자인이다. 또한 히로쓰가옥은 기존 일본식 가옥에 비해 마루와 바닥 사이의 간격이 넓었다. 이는 온돌을 깔기 위해서라고 생각 했다. 


현재 문화재 보존을 위하여 실내 관람은 불가한 상황이였다. 답사 중 관광객의 아쉬움을 들었다. "왜 내부는 못들어 가는거야?" 군산시에서 조금더 신경을 써줘야 할 부분인 것 같다. 한가지 더 아쉬운 부분으로는 일본식 가옥임에 불구하고 굳이 히로쓰가옥 앞에 태극기를 꽂아 놔야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는 오히려 '여기는 한국 땅이고 이것은 한국 것이다.' 라는 것을 고집 부리며, 억지로 끼워 맞추어 놓은 듯한 이질감이 들었다. 물론 이 것은 결국 대한민국의 것이란 것을 강조하고 싶은 군산시의 생각이 아닐까 싶다. 일제의 잔재라 하지만 역사적으로나 시대적으로 보존할만한 가치가 있는 건축물임에는 틀림이 없다는 생각을 조심스레 말해본다.



동국사 (유일한 일본식 사찰)


이번 여행 코스의 두번째 도착지이다. 필자는 동국사에 올라 갈때의 오르막길이 좋다. 이 오르막 길을 오르면 왠지 모르게 경건해지는 느낌을 받는다. 물론 사찰이라는 곳에 간다는 느낌의 기분 탓일 것이다. '동국사' 는 일제강점기에 지어져 현재까지 남아 있는  유일하게 남아 있는 일본식 사찰이다. 다른 일본식 사찰은 모두 없어지거나 새롭게 보수되어 더이상 일본식 사찰이라 불리기 어렵게 되었다. 특히 동국사 대웅전은 2003년에 등록문화재 제64호로 지정되었다. 


동국사의 오르막길을 오르면 위의 사진과 같이 대웅전과 그 앞의 넓은 마당이 보인다. 좌측편에는 종과 함께 참회비가 자리하고  있다. 일본식 기와와 높고 경사진 지붕, 과하지 않고 소박한 디자인의 전형적인 일본 건축양식의 건물이다. 사찰 뒤로는 넓은 대나무 숲이 자리잡고 있어 한층더 일본사찰의 느낌을 한껏 살려준다. 




일본 불교의 대표 종단인 '조동종' 소속 일부 스님은 16일 '동국사 창건 제104주년 다례제'에 참석, '참사문 (사과와 용서의 글) 비 제막식'을 거행했다. 이 참회비는 일본의 동지회(동국사를 지원하는 모임) 회장인 이치노혜 쇼고 스님이 주도했으며 건립비용도 일본 불교계에서 부담했다. 동국사 앞뜰에 가로 3m, 높이 2.3m 크기로 세워진 이 참회비는 익산 황등석으로 제작됐으며 일본어 원문과 한글 번역문이 함께 새겨져 있다. 


비문에는 "외국 포교를 핑계로 일제가 자행한 야욕에 수많은 아시아인이 인권 침해, 문화 멸시를 당했다. 이는 불교적 교의에 어긋나는 행위다. 석가세존과 역대 조사의 이름으로 행했던 일은 참으로 부끄러운 행위다. 진심으로 사죄하며 참회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이 비문의 번역은 군산대학교 일문학과 표세만 교수로 알고 있다.


『1913년 일제강점기에 일본인 승려 우치다(內田)에 의해 ‘금강사’라는 이름으로 창건된 동국사는 한국의 전통사찰과는 다른 양식을 띠고 있다. 주요 건물은 대웅전, 요사채, 종각 등이 자리하고 있는데, 8·15광복 뒤 김남곡 스님이 동국사로 사찰 이름을 바꿔 오늘에 이르렀다. 대한불교조계종 제24교구인 선운사의 말사이다. 


대웅전은 요사채와 복도로 연결되어 있고, 팔작지붕 홑처마 형식의 일본 에도 시대의 건축양식을 띠고 있다. 건물 외벽에는 창문을 많이 달았고, 우리나라의 처마와 달리 처마에는 아무런 장식도 없는 특징을 하고 있다. - 네이버 지식백과 발췌』


동국사 내부는 그시대의 그대로의 모습을 유지하려 힘쓴 모습이 곳곳이 보이며 현재에도 사찰로써의 임무에 충실하고 있다. 일제시대에 쓰였던 물건들이 전시되어 있다.  문화재청이 보물로 지정한 군산 동국사 '소조석가여래삼존상' 이란 불상이 있다. 이 불상은 조각승 응매의 현존하는 유일의 작품이라는 데 의의가 있다. 재미있는 점은 일본식 사찰속 한국 불상과 불상을 만든 스님은 일본군에 대항하였던 의병이라는 점이다. 



조선은행 (군산 근대건축관)


군산 여행코스의 마지막 도착지는 (구)조선은행이다. (구)조선은행은 전북 군산시 해망로 214-12번지 (장미동)에 자리하고 있으며,  현재에는 군산 근대 건축관으로 근대 건축물의 복원 과정을 세밀하게 살펴볼 수 있고, 당시 은행 관련 자료도 찾아볼 수 있다.  


이 건물은 일제강점기에 한국과 대륙의 경제 수탈을 목적으로 일제가 세운 조선은행 군산지점으로 건립하였으며, 광복 후에는 한일은행 군산지점으로 사용하였다. 정면에 돌출 현관을 중심으로 평아치를 5개 세우고 양쪽에 각각 1개씩 반원형 아치를 두었으며, 외벽 중간 보머리를 상징하는 화강석을 끼워 장식하였다. 지붕은 우진각 형식으로 함석판 잇기로 마감하였으며 물매를 매우 급하게 처리해 장중한 느낌이 난다. 




일제강점기 군산을 배경으로 한 채만식의 소설 ‘탁류’에 나오기도 하는 등 군산의 근대사를 상징하는 건물이다. 당시 일본상인들에게 특혜를 제공하면서 군산과 강경의 상권을 장악하는데 초석을 쌓아, 일제강점기 침탈적 자본주의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은행이었다.


복원 전에는 Play boy라는 미군들의 나이트 같은 술집으로 쓰였었지만, 2008년 근대문화 복원 사업으로 보수를 통해 근대 건축관으로 재탄생하여 군산 관광객들의 필수 관광 코스가 되었다. 필자의 개인적인 소견으로 너무 깨끗이 복원 된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벽돌과 콘크리트의 이질감으로 건물이 이질감이 드는건 피할수 없는 부분인 것 같다. 물론 쉽지 않은 공정이겠지만 남아 있는 부분과 조금더 어울리게 복원 하였다면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조그마한 아쉬움이 남는다.





마치며..


군산 근대 역사 지구는 갈때마다 새로운 느낌을 받고 새로운 모습이 보였다. 단지 단순한 군산여행코스가 아닌 역사와 그 시대상황을 접목시켜 답사하니 지금까지 보지 못한 부분들을 발견하게 되어 뜻깊은 시간이 되었다. 근대역사지구를 방문하는 관광객들도 재미와 볼거리만을 추구하기 보다는 우리나라의 아픈 역사를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다는 바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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